부산외국어대학교 CORE사업단. Powered by Blogger.

[야생화2/프랑스] 프랑스를 빛낸 예술가들의 생가 둘러보기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를 빛낸 예술가들의 생가 둘러보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벌써 프랑스에 온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 장 프랑수아 밀레,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4명의 예술가들이 생애를 보냈던,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작품들이 탄생한 장소에 직접 방문하여 그곳에 묻어나는 예술가들의 감성과 삶을 느껴보았습니다.


1. Paris, 빅토르 위고 생가

 먼저 프랑스의 대표 작가이자 소설가, 낭만파 시인, 프랑스 최고의 문호로 알려져 있는 빅토르 위고의 생가는 파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832년부터 1848년부터 살았던 집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의 삶이 담겨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는 크고 화려한 6개의 방들로 방안 곳곳에는 빅토르 위고가 직접 사용했던 책상, 문서, 작품들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생가에 있는 많은 가구들이나 물건들은 빅토르 위고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그의 친인척들이 모두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가 실제로 살았던 집에서 그가 어떻게 생애를 보냈는지, 많은 작품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Barbizon, 장 프랑수아 밀레 생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바르비종이라는 도시에서 생애를 보냈는데, 바르비종은 자연을 사랑했던 화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인 만큼 풍경이 뛰어났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는 아직도 많은 바르비종 파 화가들의 갤러리 들이 남아있었고, 거리 곳곳에 밀레와 루소를 제외한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볼 수 있는 웅장하게 펼쳐진 퐁텐블로 숲과 연못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던 자연 그대로의 들판들을 보고 있으면 바르비종 파 화가들이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느꼈을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밀레의 집은 아주 소박하게 3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모두 아뜰리에로 작품전시용으로만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밀레는 만종’, ‘이삭줍는 여인들’, ‘등 그의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밀레는 농민생활에서 얻는 영감으로 풍경보다는 전원생활을 그렸으며 가난하지만 신념을 굽히지 않고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농민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그런 그림들이 자연주의 화가들과 다른 점은 자연을 배경으로 대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소박한 삶과 노동의 경건함을 자연으로 승화시킨 것이 특징입니다.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기계화된 문명에 정신없이 삭막하고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데, 바르비종의 전경을 바라보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여유와 끝없이 고요하고 경건한 삶, 그들의 순수와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느끼며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3. Giverny, 클로드 모네의 생가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대표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모네는 1883, 기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본 지베르니의 아름다움에 빠져 몇 년 뒤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숨을 거둘 때까지 살았습니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지베르니는 모네가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고 생애를 마친 곳이기도 합니다.


 생가 안에는 모네의 작품들이 전시된 방과 아주 고급스럽게 꾸며진 거실, 부엌, 침실 등이 있습니다. 리빙룸에는 모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클래식하게 꾸며진 방과 모네의 작품들을 보며 모네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모네가 일본문화에 푹 빠져있던 것을 잘 알려 주듯이 집안 온 벽에는 생전에 수집했었던 일본의 풍속화들과 판화들이 많이 전시되어있는데 이 작품들은 주로 18~19세기에 그려진 것들로 200점이 넘게 전시되어있습니다.



 부엌은 개나리색의 가구들과 아기자기한 그릇들로 아주 화려하게 전시되어있었는데 모네가 살아생전 부유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수련'연작의 배경이 된 물의정원 입니다.

 모네는 빛은 곧 색이라는 인상주의의 원칙을 고수했으며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연작을 많이 제작했는데 계절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빛에 따라서 같은 배경이 다르게 표현되는 정원의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담아내었습니다.

4. Auvers-sur-oise,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가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파리 근교의 AUBERS-SUR-OISE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AUBERS-SUR-OISE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로, 19세기 고흐를 비롯해서 폴 세잔,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등의 예술가들이 정착하여 살았던 예술가의 마을로도 유명합니다. 고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 약 80여점의 작품 활동을 했고 마을 전체가 마치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마을에서의 많은 장소가 고흐 작품들의 배경이 된 것처럼 각각의 배경마다 고흐의 그림 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림과 배경을 번갈아 보고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지금의 모습과 그림에 담겨있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너무 똑같이 남아있어서 백 년 전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 라부 여관에는 고흐가 이 마을에 와서 권총으로 자살하기 전까지 지냈던 방이 있는 곳입니다. 생가라고하기에는 3평 남짓한 방 한 칸이 고작이지만 고흐가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냈던 그 방이 1890년 이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방에는 침대도 없는 창문하나가 전부였는데 한쪽 벽에는 무언가 패인 자국들이 아주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흐가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 말렸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반 고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AUBERS-SUR-OISE는 고흐의 흔적들로 가득한 마을이었고, 매력적인 풍경들과 평온함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서 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그 장소들 앞에 서있으니 그가 걸어갔던 길, 고흐가 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더 쉽게 다가왔고 아직까지도 그림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야생화2/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의 최대 명절 나우루즈 활동을 끝마치며

어느덧, 카자흐스탄이라는 먼 나라에 온 지도 4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4개월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야생화 프로그램을 통한 활동으로 인해 카작의 문화, 전통 그리고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우루즈 당일( 3월 21일, 22일, 23일) 을 제외하고도 나우루즈를 축하하는 행사들이 계속 되는데요,

4월1일은 기숙사에서 외국인들 학생을 위한 나우루즈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사진은 외국인 학생들이 다 같이 모인 사진입니다 ㅎㅎ



이렇게 각자 자신의 나라의 음식들도 준비해서 상을 차려놓기도 하구요



나라별로 팀을 나누어서 줄달리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열기가 아주 뜨겁죠?



이렇게 사탕을 뿌리는 행위는 결혼식에서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복 많이 받아라라는 의미 입니다 ㅎㅎ



이렇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요
돈부라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카작 학생들과 함께 카작 춤을 추기도 했었습니다.

나우루즈 명절 당일에도 국가에서 축하하는 행사들이 워낙 커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선생님과 다른나라 친구들과 함께 나우루즈를 축하하고 준비하니
더욱더 기억이 남고 뜻깊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 날은 4월22일 카즈누 국립대학교에서 나우루즈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날은 예비학부 학생들도 수업을 빠지고 지도 교수님들과 함께 나우루즈 축제에 참가했는데요, 정말 스케일이 엄청났습니다. 저렇게 큰 유르타가 15개 정도가 설치되어있었고
외국인이라고 하면 정말 크게 환영해주고 좋아해줬습니다.


이렇게 결혼식 퍼포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유르타 안을 들어가면 이렇게 엄청난 음식들이 반기고 있습니다 ㅎㅎ
 
 
 
흥이 넘치는 민족답게 노래는 빠질 수가 없지요^^
 
 
 
대학교 축제이지만 크기가 일반 시민들도 참여해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랑은 조금 사뭇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이 곳은 카작 민속 음악 박물관입니다.
카작민속 악기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민속악기가 다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돈부라' 라고하는 카작 전통 악기인데요.
박물관안에 돈부라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종류에 따라 소리도 다양하다고는 하나, 카작 친구에게 물어보니
다른 소리를 가진 돈부라도 있으나 일반인이 듣기에는 구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ㅎ
" 돈부라 족, 카작 족 " ( 돈부라가 없으면 카작도 없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작사람들에게 돈부라는 중요한 악기입니다ㅎ
나우루즈때도 절대 빠지지 않죠!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악기이고 돈브라의 소리가 곧 카작의 소리라고 합니다.
돈부라는 줄 두개로 모든 소리를 낼 수 있는데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퀴' 라고 합니다
돈부라를 연주할 수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퀴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잠시 카작의 소리에 대해 감상하시죠~ ㅎ
 


4개월 동안 나우루즈 명절 에대해 활동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갈려고하는 카작 민족을 보면서 느낀점도 많았고
또 그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너무 짧은 교환학생기간이여서 물흐르듯 시간을 보낼 수 도 있었을텐데
야생화를 통해서 매달 뜻깊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저 스스로도 정말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짧고도 짧았던 카자흐스탄 이제 안녕~







[야생화2/프랑스] 건축의 발자취를 통한 프랑스의 시대상과 문화


안녕하세요 ! 이번에 프랑스에 파견이 된 유주혜라고 합니다 :)

먼저 첫번째 포스팅에서는 고딕양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프랑스에서 대표적으로 '고딕양식' 하면 떠오르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같은 고딕양식이라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조금 다른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고딕양식

1)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먼저 Chartres(샤르트르) 마을은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파리 근교마을입니다 ! 그래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많이 온다고 합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샤르트르 대성당을 향해서 걸어가다 보면
이렇게 샤르트르에 온 것을 환영하는 전광판이 나오게 됩니다 !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은 형형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여 신비로운 실내 장식으로 연출하였습니다. 약 1200개에 다르는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중세시절 왕족과 성경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하였습니다. 문화유산물에 유일하게 일반시민의 모습도 함께 그려진 모습으로 비추어 볼 때 샤르트르 대성당의 복원과 유지에 관련하여 그 시절 프랑스 시민들의 도움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만의 독특한 푸릉색 스테인드 글라스는 ‘샤르트르 블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쟝 드 장뒹 철학가는 ‘들어서는 순간 천국에 온 듯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역시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비교해 보았을 때 스테인드 글라스 만큼은 샤르트르가 더 아름답고 독특하고 신비롭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시절 로마네스크 건축은 비교적 튼튼하게 건물을 세우는 것을 중점으로 두어
그 벽은 최대한 두껍게 하고 그로인해 실내는 작고 창문은 많이 만들 수 없었는데
반면 고딕양식의 표본이나 첫 발판이었던 샤르트르 대성당은
교회건축물로써 대표할 수 있을 만한 상징적인 조각들로 화려함을 유도하였고,
하늘과 가깝게 하기 위해 천장은 높게하면서 아치를 향해 뻗은 수많은 기둥들의
모양과 크기를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2)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Notre-dame cathedrale de Paris)
 
센느 강의 시테 섬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 12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의미로 성모마리아를 가리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의 종교 예술이 집결된 ‘고딕의 보물’로 평가받고있습니다. 먼저 건물 정면에 있는 문 3개는 북쪽이 ‘성모마리아의 문’, 중앙이 ‘최후의 심판의 문’, 남쪽이 ‘성 안나의 문’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대성당은 1163년에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착공되었습니다. 1320년경에 공사는 끝났으나 건설 도중과 완성 후에도 대성당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예를들어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바로 이곳에서 열린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옆모습 모형)
 
 
 
대성당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3개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색색의 유리를 통과하는 빛의 색깔이 아름다워 ‘장미창’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이 1210년경에 제작된 것입니다. 특히 파리 대성당의 장미창은 4가지 색만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과연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4가지 색상만으로 저런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비교해 보자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3개의 장식 중 남쪽은 그리스도를 테마로, 북쪽은 성모마리아를 테마로 잡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습니다. 또한 성당 내부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조각들은 역대 왕들이나 교황들의 모습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 샤르트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탑은 15세기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거지에서 왕까지 온갖 계급을 통하여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과 부당한 형별제도, 하층민의 소외단 삶 등을 묘사한 소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무섭기도 한 조각상은 뮤지컬과 소설의 주인공 ‘콰지모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종탑에 올라오면 ‘콰지모도의 종’과 고딕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인 뾰족한 첨탑과 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십자가 모양으로 생겼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에펠탑, 몽마르트언덕, 몽파르나스타워 등이 한 눈에 보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CORE 야생화(野生花)프로젝트 © | Template by Blogger Templates Gallery collaboration with Life2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