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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2/프랑스] 건축의 발자취를 통한 프랑스의 시대상과 문화


안녕하세요 ! 이번에 프랑스에 파견이 된 유주혜라고 합니다 :)

먼저 첫번째 포스팅에서는 고딕양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프랑스에서 대표적으로 '고딕양식' 하면 떠오르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같은 고딕양식이라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조금 다른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고딕양식

1)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먼저 Chartres(샤르트르) 마을은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파리 근교마을입니다 ! 그래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많이 온다고 합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샤르트르 대성당을 향해서 걸어가다 보면
이렇게 샤르트르에 온 것을 환영하는 전광판이 나오게 됩니다 !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은 형형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여 신비로운 실내 장식으로 연출하였습니다. 약 1200개에 다르는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중세시절 왕족과 성경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하였습니다. 문화유산물에 유일하게 일반시민의 모습도 함께 그려진 모습으로 비추어 볼 때 샤르트르 대성당의 복원과 유지에 관련하여 그 시절 프랑스 시민들의 도움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만의 독특한 푸릉색 스테인드 글라스는 ‘샤르트르 블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쟝 드 장뒹 철학가는 ‘들어서는 순간 천국에 온 듯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역시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비교해 보았을 때 스테인드 글라스 만큼은 샤르트르가 더 아름답고 독특하고 신비롭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시절 로마네스크 건축은 비교적 튼튼하게 건물을 세우는 것을 중점으로 두어
그 벽은 최대한 두껍게 하고 그로인해 실내는 작고 창문은 많이 만들 수 없었는데
반면 고딕양식의 표본이나 첫 발판이었던 샤르트르 대성당은
교회건축물로써 대표할 수 있을 만한 상징적인 조각들로 화려함을 유도하였고,
하늘과 가깝게 하기 위해 천장은 높게하면서 아치를 향해 뻗은 수많은 기둥들의
모양과 크기를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2)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Notre-dame cathedrale de Paris)
 
센느 강의 시테 섬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 12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의미로 성모마리아를 가리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의 종교 예술이 집결된 ‘고딕의 보물’로 평가받고있습니다. 먼저 건물 정면에 있는 문 3개는 북쪽이 ‘성모마리아의 문’, 중앙이 ‘최후의 심판의 문’, 남쪽이 ‘성 안나의 문’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대성당은 1163년에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착공되었습니다. 1320년경에 공사는 끝났으나 건설 도중과 완성 후에도 대성당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예를들어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바로 이곳에서 열린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옆모습 모형)
 
 
 
대성당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3개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색색의 유리를 통과하는 빛의 색깔이 아름다워 ‘장미창’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이 1210년경에 제작된 것입니다. 특히 파리 대성당의 장미창은 4가지 색만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과연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4가지 색상만으로 저런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비교해 보자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3개의 장식 중 남쪽은 그리스도를 테마로, 북쪽은 성모마리아를 테마로 잡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습니다. 또한 성당 내부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조각들은 역대 왕들이나 교황들의 모습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 샤르트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탑은 15세기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거지에서 왕까지 온갖 계급을 통하여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과 부당한 형별제도, 하층민의 소외단 삶 등을 묘사한 소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무섭기도 한 조각상은 뮤지컬과 소설의 주인공 ‘콰지모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종탑에 올라오면 ‘콰지모도의 종’과 고딕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인 뾰족한 첨탑과 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십자가 모양으로 생겼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에펠탑, 몽마르트언덕, 몽파르나스타워 등이 한 눈에 보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야생화1/스페인] 스페인 문학기행

안녕하세요 저희는 스페인 문학을 통해 스페인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문학기행을 떠난 김동윤, 이주환, 이석현, 김인지입니다.


인천공항

16년 12월 31일 출국 (12.31~01.01 중국, 네덜란드 경유)

  이 당시만 해도 유럽 여행이라는 기대감에 잔뜩 신난 저희들은 두 번의 경유와 30시간의 비행이 이렇게나 힘든줄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겨우 도착한 중국 베이징의 공기는 매우 탁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스모그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공항과 가까웠던 숙소에서는 프론트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불통으로 인해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 환경은 매우 좋았으며 직원들은 외국인인 저희들에게 매우 친절해 편하게 쉬다 다른 경유지인 네덜란드로 출발했습니다. (의사소통 불통으로 인해 엄지손가락만 찍힌 조원1)


중국 베이징 숙소

 중국 남방 항공을 타고 가다가 네덜란드 케이엘엠 항공으로 갈아타자 서서히 유럽으로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으며 더욱 더 신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아닌 서양 사람들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거나 약을 달라고 요청하는 등의 행동은 살면서 매우 생소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착한 네덜란드는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키가 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괜히 천장이 높은 건물에 들어가면 '아 그래서 높구나' 하는 근거없는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암스테르담으로 나갔는데 한국과는 다르게 교통비가 상당히 비쌌습니다. 그에 비례하는 지하철 내부는 참 놀라웠죠. (감탄만 하고 사진은 찍지 못함)


17년 1월 1일 저녁  바르셀로나 도착

 힘겹게 도착한 타국 스페인은 밤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변에서는 스페인어가 들려왔고 밖으로 나가면 건물들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좌식생활이 아닌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며 피곤에 지친 저희들은 바로 잠을 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영수증을 정리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숙소


17년 1월 3일 발렌시아 도착



발렌시아 숙소


  바르셀로나에서 적당한 휴식을 취한 뒤 저희는 엘 시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발렌시아 일정을 잡았습니다. 엘 시드는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 또는 엘 시드 캄페아도르(El Cid Campeador)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카스티야 귀족이자 장군 및 외교관이었으며 후에 발렌시아에 망명하여 정복하고 통치했습니다. 
  엘 시드 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관사인 엘(El), 그리고 아랍 방언 단어 سيد 시디 또는 sayyid는 '경(Lord)'이라는 뜻인데 'Campeador'라는 명칭은 'campidoctor'에서 왔으며, 중세 라틴어로 개략적인 의미는 '투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엘 시드 캄페아도르'를 번역하자면 투사 영주님 이라는 뜻으로 그는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소매치기로 위험으로 인해 촬영 협조 불가능 따라서 불가피하게 조원 1은 엄지손가락만 출연)


엘 시드 동상 앞


엘 시드 동상 앞 2

17년 1월 8일 세비야 도착


세비야 정류장

  세비야에 도착한 저희는 한참을 헤매다 좋은 스패인 분들을 만나 다행스럽게 숙소에 체크인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현지에서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리자 전화도 빌려주셨으며 대신 통화도 해주시 길도 안내해주신 그분께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희는 짐을 풀고 쉬었습니다. 날이 좋아서 세비야 대성당도 가보고 원래 일정이던 돈 후안 동상 앞에서 인터뷰하기, 황금의 탑 찍기 등의 일정을 수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황금의 탑


세비야 대성당


성당 내부에 떠있는 콜롬버스의 관
(콜롬버스의 유언 때문에 공중에 떠있다 - 검색추천)


  세비야에서 주된 활동은 돈 후안 동상을 찍고 그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의견을 인터뷰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돈 후안 동상이 인파가 거의 없는 공원 뒤쪽에 있다보니 인터뷰 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의지로 인터뷰를 성공했습니다.
  '돈 후안'은 '카사노바'와는 달리 상상속의 인물이며 원래 민간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스페인의 극작가인 티르소 데 몰리나가  쓴 희극인 <세비야의 호색가(El burlador de sevilla)>에서 문학적 주인공으로 처음 선보이게 됩니다. 이를 통해 돈 키호테, 햄릿, 파우스트만큼이나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으며, 희곡이나 소설, 시 등에서 악당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책에대한 간략한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중세 스페인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방탕한 귀족이며 여자를 유혹하였다가 버리고 죽이는 엽색행위를 거듭하는데 결국 성직자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는 중세시대 전설의 바람둥이이며 바람둥이 세계에서는 이탈리아의 카사노바와 쌍벽을 이룬다고 합니다. 또한 스페인에서는 바람둥이를 일컷는 말로 '돈 후아니즘'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돈 후안 인터뷰 1
(돈 후안이 어떤 사람이고 사람들이 왜 돈 후안의 엽색행위를 사랑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페인의 고등학생)



돈 후안 인터뷰 2
(돈 후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책의 내용과 그의 행실이 어떤지 또한 어째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은 바람둥이 돈 후안의 동상이 세비야에 세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






(소매치기 위험으로 사진 부탁이 어려워 사진 찍는 조원은 불가피하게 엄지손가락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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