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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2/스페인] 스페인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

지난 번 글에서 스페인 속의 이슬람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스페인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슬람의 흔적들을 알아보겠습니다 😁

1. 올리브유

저는 스페인에 와서 가장 많이 보고 맛본 것이 바로 올리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페인에는 올리브유가 아주 많이 쓰이고 보편화 되어 있는데요
식당이든 가정집이든 올리브유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빵이든 샐러드든 올리브유를 꼭 곁들여 먹고,


 요리를 할 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올리브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스페인사람들의 삶 속에 올리브유가 깊이 자리 잡은 걸지도 모르지만

놀랍게도 이처럼 스페인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올리브유 마저도 
이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무슬림들이 요리를 할 때 돼지기름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올리브유를 사용해 요리를 했는데 

이 것이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이 때 부터 올리브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추로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스페인의 추로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주로 먹는 것인데요
스페인의 아침은 카페마다 추로스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카페에 앉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탁자에 추로스를 산처럼 쌓아놓고 커피와 함께 먹습니다.
종종 진하고 따뜻한 초코라떼(chocolate)에 찍어먹기도 하지만
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커피와 함께 먹습니다.

젊은 이들은 숙취해소를 위해 아침에 추로스와 초콜라떼를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또한 이슬람 세력의 정복시기에 들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스페인사람들의 삶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알고보면 너무나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3. 뚜론과 아이스크림

뚜론 가게

아이스크림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처음 스페인에 들어왔고

스페인에 여행가면 사오는 기념품들 중 하나일 정도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간식인 뚜론 (우리나라의 엿과 비슷하다) 또한 이슬람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뚜론은 무슬림이 많은 터키에서도 비슷한 이름의 비슷한 맛을 가진 간식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보아 뚜론이라는 간식의 시작이 이슬람에 의한 것이라는 말에 더욱 신빙성이 주어집니다.



여행객들이 많이 오가는 말라가 시내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뚜론맛 아이스크림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




이슬람에의해 들여진 것들이 스페인 사람들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 그리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간식이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

[야생화2/스페인] 스페인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

게시글의 제목을 보고 
'스페인에 왜 이슬람의 흔적이 있어?' 라는 질문을 하실 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블로깅에 앞서 저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배경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

스페인은 이슬람세력으로부터 711년부터 1492년 까지 약 781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스페인이라는 국가명칭이 아닌 서고트라는 이름의 왕국의 모습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는데
당시 왕위의 계승은 아들에게로 물려지는 것이 아니라 왕국의 귀족들에 의해 선출되던 제도인데다 재위기간도 짧아 왕의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던 때 였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왕 로드리고는 권력에 취해 귀족의 딸을 강제로 범하였고 이를 알게 된 그 귀족이 이슬람 군대를 끌어들여 로드리고 왕을 죽였습니다.
그의 복수는 성공했지만 그렇게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이슬람교도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서 전 유럽을 이슬람화 시키고자 했고 결국 이슬람세력은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뭘까요?
 
이슬람세력의 강한 군대와 왕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서고트 왕국의 병력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스페인의 국교이던 가톨릭교의 강압적인 반유대주의와 유대교, 타종교의 억압으로 불만이 쌓여있던 유대인들과 시민들이 이슬람세력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배세력이던 서고트 왕족은 이슬람이 쳐들어오자 도망가기에 바빴고 유대교인들과 시민들은 성문을 열어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이슬람도 항복하는 이들에겐 선처를 베풀었고 무슬림이 아니더라고 약간의 종교세만 내면 본인들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녹색은 이슬람 왕조의 영토
오늘날 스페인의 영토


 
 
그렇게 스페인 전역을 차지한 이슬람세력은 781년간 머무르다 결국 가톨릭, 종교를 명분으로 힘을 모은 스페인의 여러 왕국에 의해 물러나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이 물러나는 모습
남쪽으로 후퇴되어 지금의 안달루시아 지역이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가장 오랜 시간 있었던 만큼
 그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이야기를 한 것은
앞으로의 제가 스페인에서 활동할 내용이 역사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어야 조금 더 재밌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정복한 기간은 한국역사와 비교해 보자면 
약 신라시대의 성덕왕, 발해의 고왕 때부터 조선의 성종 때까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적으니 더욱 그 긴 시간이 와 닿지요? :)
 
그렇다면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이슬람은 스페인에 있으면서 어떤 것들을 남겼을까요?
 
álgebra 수학, arroz , arrabal 교외, alcalde 시장, azúl 파란색
처럼 아랍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뭔~~가 아랍스러운 발음을 내는 아랍에 어원을 둔 단어들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가져온 0의 개념, 당나라와의 무역으로 얻은 종이, 농지에 물을대는 관개기술 까지 가져왔습니다 .
게다가
점성학, 연금술, 산수, 기하, 천문, 음악 이론,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 ·식물학, 논리학, 의학, 약리학, 수리학 등등 아주 다양한 장르의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했습니다. 아랍학자들의 노력으로 그리스의 문헌들은 번역되어 보존되었고 이로부터 유럽에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유럽에서는 가톨릭을 믿으며 그리스 학문과 사상은 소외받았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죠.

다음 게시글에서는 제가 스페인에 와서 직접 보고 느낀 이슬람의 흔적,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그들의 생각을 블로깅 하도록 하겠습니다 :)

[야생화2/프랑스] 프랑스를 빛낸 예술가들의 생가 둘러보기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를 빛낸 예술가들의 생가 둘러보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벌써 프랑스에 온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 장 프랑수아 밀레,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4명의 예술가들이 생애를 보냈던,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작품들이 탄생한 장소에 직접 방문하여 그곳에 묻어나는 예술가들의 감성과 삶을 느껴보았습니다.


1. Paris, 빅토르 위고 생가

 먼저 프랑스의 대표 작가이자 소설가, 낭만파 시인, 프랑스 최고의 문호로 알려져 있는 빅토르 위고의 생가는 파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832년부터 1848년부터 살았던 집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의 삶이 담겨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는 크고 화려한 6개의 방들로 방안 곳곳에는 빅토르 위고가 직접 사용했던 책상, 문서, 작품들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생가에 있는 많은 가구들이나 물건들은 빅토르 위고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그의 친인척들이 모두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가 실제로 살았던 집에서 그가 어떻게 생애를 보냈는지, 많은 작품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Barbizon, 장 프랑수아 밀레 생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바르비종이라는 도시에서 생애를 보냈는데, 바르비종은 자연을 사랑했던 화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인 만큼 풍경이 뛰어났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는 아직도 많은 바르비종 파 화가들의 갤러리 들이 남아있었고, 거리 곳곳에 밀레와 루소를 제외한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볼 수 있는 웅장하게 펼쳐진 퐁텐블로 숲과 연못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던 자연 그대로의 들판들을 보고 있으면 바르비종 파 화가들이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느꼈을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밀레의 집은 아주 소박하게 3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모두 아뜰리에로 작품전시용으로만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밀레는 만종’, ‘이삭줍는 여인들’, ‘등 그의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밀레는 농민생활에서 얻는 영감으로 풍경보다는 전원생활을 그렸으며 가난하지만 신념을 굽히지 않고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농민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그런 그림들이 자연주의 화가들과 다른 점은 자연을 배경으로 대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소박한 삶과 노동의 경건함을 자연으로 승화시킨 것이 특징입니다.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기계화된 문명에 정신없이 삭막하고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데, 바르비종의 전경을 바라보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여유와 끝없이 고요하고 경건한 삶, 그들의 순수와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느끼며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3. Giverny, 클로드 모네의 생가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대표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모네는 1883, 기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본 지베르니의 아름다움에 빠져 몇 년 뒤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숨을 거둘 때까지 살았습니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지베르니는 모네가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고 생애를 마친 곳이기도 합니다.


 생가 안에는 모네의 작품들이 전시된 방과 아주 고급스럽게 꾸며진 거실, 부엌, 침실 등이 있습니다. 리빙룸에는 모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클래식하게 꾸며진 방과 모네의 작품들을 보며 모네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모네가 일본문화에 푹 빠져있던 것을 잘 알려 주듯이 집안 온 벽에는 생전에 수집했었던 일본의 풍속화들과 판화들이 많이 전시되어있는데 이 작품들은 주로 18~19세기에 그려진 것들로 200점이 넘게 전시되어있습니다.



 부엌은 개나리색의 가구들과 아기자기한 그릇들로 아주 화려하게 전시되어있었는데 모네가 살아생전 부유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곳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수련'연작의 배경이 된 물의정원 입니다.

 모네는 빛은 곧 색이라는 인상주의의 원칙을 고수했으며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연작을 많이 제작했는데 계절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빛에 따라서 같은 배경이 다르게 표현되는 정원의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담아내었습니다.

4. Auvers-sur-oise,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가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파리 근교의 AUBERS-SUR-OISE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AUBERS-SUR-OISE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로, 19세기 고흐를 비롯해서 폴 세잔,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등의 예술가들이 정착하여 살았던 예술가의 마을로도 유명합니다. 고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 약 80여점의 작품 활동을 했고 마을 전체가 마치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마을에서의 많은 장소가 고흐 작품들의 배경이 된 것처럼 각각의 배경마다 고흐의 그림 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림과 배경을 번갈아 보고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지금의 모습과 그림에 담겨있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너무 똑같이 남아있어서 백 년 전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 라부 여관에는 고흐가 이 마을에 와서 권총으로 자살하기 전까지 지냈던 방이 있는 곳입니다. 생가라고하기에는 3평 남짓한 방 한 칸이 고작이지만 고흐가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냈던 그 방이 1890년 이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방에는 침대도 없는 창문하나가 전부였는데 한쪽 벽에는 무언가 패인 자국들이 아주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흐가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 말렸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반 고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AUBERS-SUR-OISE는 고흐의 흔적들로 가득한 마을이었고, 매력적인 풍경들과 평온함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서 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그 장소들 앞에 서있으니 그가 걸어갔던 길, 고흐가 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더 쉽게 다가왔고 아직까지도 그림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야생화2/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의 최대 명절 나우루즈 활동을 끝마치며

어느덧, 카자흐스탄이라는 먼 나라에 온 지도 4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4개월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야생화 프로그램을 통한 활동으로 인해 카작의 문화, 전통 그리고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우루즈 당일( 3월 21일, 22일, 23일) 을 제외하고도 나우루즈를 축하하는 행사들이 계속 되는데요,

4월1일은 기숙사에서 외국인들 학생을 위한 나우루즈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사진은 외국인 학생들이 다 같이 모인 사진입니다 ㅎㅎ



이렇게 각자 자신의 나라의 음식들도 준비해서 상을 차려놓기도 하구요



나라별로 팀을 나누어서 줄달리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열기가 아주 뜨겁죠?



이렇게 사탕을 뿌리는 행위는 결혼식에서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복 많이 받아라라는 의미 입니다 ㅎㅎ



이렇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요
돈부라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카작 학생들과 함께 카작 춤을 추기도 했었습니다.

나우루즈 명절 당일에도 국가에서 축하하는 행사들이 워낙 커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선생님과 다른나라 친구들과 함께 나우루즈를 축하하고 준비하니
더욱더 기억이 남고 뜻깊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 날은 4월22일 카즈누 국립대학교에서 나우루즈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날은 예비학부 학생들도 수업을 빠지고 지도 교수님들과 함께 나우루즈 축제에 참가했는데요, 정말 스케일이 엄청났습니다. 저렇게 큰 유르타가 15개 정도가 설치되어있었고
외국인이라고 하면 정말 크게 환영해주고 좋아해줬습니다.


이렇게 결혼식 퍼포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유르타 안을 들어가면 이렇게 엄청난 음식들이 반기고 있습니다 ㅎㅎ
 
 
 
흥이 넘치는 민족답게 노래는 빠질 수가 없지요^^
 
 
 
대학교 축제이지만 크기가 일반 시민들도 참여해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랑은 조금 사뭇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이 곳은 카작 민속 음악 박물관입니다.
카작민속 악기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민속악기가 다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돈부라' 라고하는 카작 전통 악기인데요.
박물관안에 돈부라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종류에 따라 소리도 다양하다고는 하나, 카작 친구에게 물어보니
다른 소리를 가진 돈부라도 있으나 일반인이 듣기에는 구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ㅎ
" 돈부라 족, 카작 족 " ( 돈부라가 없으면 카작도 없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작사람들에게 돈부라는 중요한 악기입니다ㅎ
나우루즈때도 절대 빠지지 않죠!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악기이고 돈브라의 소리가 곧 카작의 소리라고 합니다.
돈부라는 줄 두개로 모든 소리를 낼 수 있는데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퀴' 라고 합니다
돈부라를 연주할 수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퀴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잠시 카작의 소리에 대해 감상하시죠~ ㅎ
 


4개월 동안 나우루즈 명절 에대해 활동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갈려고하는 카작 민족을 보면서 느낀점도 많았고
또 그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너무 짧은 교환학생기간이여서 물흐르듯 시간을 보낼 수 도 있었을텐데
야생화를 통해서 매달 뜻깊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저 스스로도 정말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짧고도 짧았던 카자흐스탄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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