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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2/스페인] 스페인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

지난 번 글에서 스페인 속의 이슬람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스페인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슬람의 흔적들을 알아보겠습니다 😁

1. 올리브유

저는 스페인에 와서 가장 많이 보고 맛본 것이 바로 올리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페인에는 올리브유가 아주 많이 쓰이고 보편화 되어 있는데요
식당이든 가정집이든 올리브유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빵이든 샐러드든 올리브유를 꼭 곁들여 먹고,


 요리를 할 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올리브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스페인사람들의 삶 속에 올리브유가 깊이 자리 잡은 걸지도 모르지만

놀랍게도 이처럼 스페인 사람들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올리브유 마저도 
이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무슬림들이 요리를 할 때 돼지기름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올리브유를 사용해 요리를 했는데 

이 것이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이 때 부터 올리브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추로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스페인의 추로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주로 먹는 것인데요
스페인의 아침은 카페마다 추로스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카페에 앉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탁자에 추로스를 산처럼 쌓아놓고 커피와 함께 먹습니다.
종종 진하고 따뜻한 초코라떼(chocolate)에 찍어먹기도 하지만
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커피와 함께 먹습니다.

젊은 이들은 숙취해소를 위해 아침에 추로스와 초콜라떼를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또한 이슬람 세력의 정복시기에 들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스페인사람들의 삶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알고보면 너무나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3. 뚜론과 아이스크림

뚜론 가게

아이스크림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처음 스페인에 들어왔고

스페인에 여행가면 사오는 기념품들 중 하나일 정도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간식인 뚜론 (우리나라의 엿과 비슷하다) 또한 이슬람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뚜론은 무슬림이 많은 터키에서도 비슷한 이름의 비슷한 맛을 가진 간식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보아 뚜론이라는 간식의 시작이 이슬람에 의한 것이라는 말에 더욱 신빙성이 주어집니다.



여행객들이 많이 오가는 말라가 시내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뚜론맛 아이스크림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




이슬람에의해 들여진 것들이 스페인 사람들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 그리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간식이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

[야생화2/스페인] 스페인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

게시글의 제목을 보고 
'스페인에 왜 이슬람의 흔적이 있어?' 라는 질문을 하실 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블로깅에 앞서 저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배경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

스페인은 이슬람세력으로부터 711년부터 1492년 까지 약 781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스페인이라는 국가명칭이 아닌 서고트라는 이름의 왕국의 모습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는데
당시 왕위의 계승은 아들에게로 물려지는 것이 아니라 왕국의 귀족들에 의해 선출되던 제도인데다 재위기간도 짧아 왕의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던 때 였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왕 로드리고는 권력에 취해 귀족의 딸을 강제로 범하였고 이를 알게 된 그 귀족이 이슬람 군대를 끌어들여 로드리고 왕을 죽였습니다.
그의 복수는 성공했지만 그렇게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이슬람교도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서 전 유럽을 이슬람화 시키고자 했고 결국 이슬람세력은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뭘까요?
 
이슬람세력의 강한 군대와 왕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서고트 왕국의 병력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스페인의 국교이던 가톨릭교의 강압적인 반유대주의와 유대교, 타종교의 억압으로 불만이 쌓여있던 유대인들과 시민들이 이슬람세력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배세력이던 서고트 왕족은 이슬람이 쳐들어오자 도망가기에 바빴고 유대교인들과 시민들은 성문을 열어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이슬람도 항복하는 이들에겐 선처를 베풀었고 무슬림이 아니더라고 약간의 종교세만 내면 본인들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녹색은 이슬람 왕조의 영토
오늘날 스페인의 영토


 
 
그렇게 스페인 전역을 차지한 이슬람세력은 781년간 머무르다 결국 가톨릭, 종교를 명분으로 힘을 모은 스페인의 여러 왕국에 의해 물러나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이 물러나는 모습
남쪽으로 후퇴되어 지금의 안달루시아 지역이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가장 오랜 시간 있었던 만큼
 그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이야기를 한 것은
앞으로의 제가 스페인에서 활동할 내용이 역사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어야 조금 더 재밌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정복한 기간은 한국역사와 비교해 보자면 
약 신라시대의 성덕왕, 발해의 고왕 때부터 조선의 성종 때까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적으니 더욱 그 긴 시간이 와 닿지요? :)
 
그렇다면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이슬람은 스페인에 있으면서 어떤 것들을 남겼을까요?
 
álgebra 수학, arroz , arrabal 교외, alcalde 시장, azúl 파란색
처럼 아랍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뭔~~가 아랍스러운 발음을 내는 아랍에 어원을 둔 단어들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가져온 0의 개념, 당나라와의 무역으로 얻은 종이, 농지에 물을대는 관개기술 까지 가져왔습니다 .
게다가
점성학, 연금술, 산수, 기하, 천문, 음악 이론,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 ·식물학, 논리학, 의학, 약리학, 수리학 등등 아주 다양한 장르의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했습니다. 아랍학자들의 노력으로 그리스의 문헌들은 번역되어 보존되었고 이로부터 유럽에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유럽에서는 가톨릭을 믿으며 그리스 학문과 사상은 소외받았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죠.

다음 게시글에서는 제가 스페인에 와서 직접 보고 느낀 이슬람의 흔적,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그들의 생각을 블로깅 하도록 하겠습니다 :)

[야생화2/스페인] 각 지열별 건축물을 통해 배우는 스페인 문화

안녕하세요.

이번에 해외파견을 가게 된 스페인의 건축물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건축물을 통한 관광은 스페인 수입에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아주 유명하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는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건축가가 남긴 유명한 건축물이 많이 있습니다.


첫 번째 건축물은 레이알광장에 있는 가우디의 가로등입니다.


가로등의 중심에는 화려한 투구모양을 달고 있는 기둥이 있고 그 주위로 6개의 가로등이 둘러져있습니다. 가우디는 그의 첫번째 건축물인 이 가로등으로 바르셀로나 시에서 주최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했습니다. 시에서는 이 가로등을 거리에 설치하기로 하였으나 비용상의 문제로 없던 일이 되었고 이에 화가 난 가우디는 더 이상 시와 관련된 사업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구엘공원입니다.




가우디투어를 하면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바로 구엘공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시했던 가우디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구엘공원은 원래 60호 이상의 이상적인 전원주택를 지어 부유층에게 분양할 생각 이였으나 당시 시대와 맞지 않는 발상과 재정문제로 인해 건물 세 채와 중앙광장, 타일벤치만 지어진 채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공원을 사들여 시립공원으로 꾸몄고 그 후로 시민들이 다녀가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위주로 한 건물들과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이 인상깊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가장 잘 어우러진 예로는 타일벤치가 있습니다이 벤치는 등부분은 나와 있고 엉덩이부분은 들어가 있는 곡선의 모습으로 미적요소뿐만 아니라 자세교정도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비가 오면 움푹 패인 엉덩이부분으로 물이 흘러내려가 도마뱀동상의 입으로 흘러나오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성가족이라는 뜻으로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을 뜻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가우디는 성당 외부에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성당의 겉모습을 보면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이며 성당의 외벽은 유럽의 어느 건축양식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멘트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의 곡선이 보이며 매우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당의 내부는 나뭇가지를 닮은 기둥들이 천장을 향해 세워져있습니다. 또한 자연광을 이용해 성당 내부를 밝힐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완성인 채 아직까지 지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성당은 관광객들의 입장료나 기부금을 받아서 지어지고 있고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완성될 경우 성당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약 170m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까사밀라입니다.


까사밀라는 1984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물중 하나이로 독특한 외관이 채석장 같다고 하여 스페인어로 채석장이라는 뜻의 라 페드레라라고도 불리는 아파트형식의 공동주택입니다. 이 건축에서도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라는 가우디의 신념을 보여주듯 자연과 흡사한 모습으로 아파트를 완성했습니다. 건물 전면에 느낌은 마치 물결이 파도치는 듯해 살아있는 곡선을 보는듯하고 옷장과 등받이의자 등의 가구도 집 구조에 맞게 모두 곡선입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은 일직선과 직각이기만 했던 당시의 건축물들과 맞지 않았고 아파트 분양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고 바르셀로나 시내를 구경했을 때 거리뿐만 아니라 식당과 성당에서도 가우디의 건축물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만큼 가우디가 스페인의 건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우디의 철학이 담겨있는 건축물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가우디를 이해하게 되었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이상으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야생화1/스페인] 스페인 문학기행3

  안토니오 마차도 이후 저희들(김동윤, 이주환, 이석현, 김인지)은 엘 시드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 그의 고향인 부르고스로 향했습니다. 부르고스는 저희들이 갔던 다른 지역들 (마드리드, 발렌시아, 세비야, 르셀로나...)보다 추웠습니다.



1월 20일 부르고스


<엘 시드 동상 앞>

  엘 시드에 대한 설명이 문학기행 1에 상세하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그는 카스티야 귀족이자 장군 및 외교관이었으며 후에 발렌시아에 망명하여 정복하고 통치하였습니다.
 
 

<엘 시드의 검을 보관중인 성당(꼭지부분)>



<성당 내부>


 

<엘 시드의 칼을 보관중인 성당 안 'CAPILLA DE CORPUS CHRISTI'>

  그의 칼을 보관중이라는 성당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복원중이라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숙소 앞 언어학교>

  저희가 예약했던 숙소 앞에 언어학교가 있었는데 맨 위에 '언어언어언어...'라고 쓰여 있어 너무 반가운 마음에 찍었습니다. 
 
 

1월 22일 바르셀로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위해 잠시 머물렀던 바르셀로나는, 첫 날 정신없이 도착해 당일 예약한 불만족스러운 숙소에서 잠만 자고 부랴부랴 일정을 서두르던.. 악몽만 가득했던 바르셀로나가 아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구경거리가 많았고, 사람들도 친절했으며, 위험하다던 고딕지구에서는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스페인 어디에서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음.)


<바르셀로나 식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 벽>

설명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안토니 가우디'가 1883년부터 40년 이상 이 교회의 건설을 책임졌으며, 말년 15년은 여기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가장 큰 문이 3개나 되는데 이를 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 이라고 하며, 아직까지 완공이 얼마나 걸릴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일단 2026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구글)
 
 

<성당의 꼭대기에서 찍은 바르셀로나>



<내려가는 계단>



1월 27일 출국 (바르셀로나-암스테르담-베이징)
-항공편 지연, KLM항공사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줘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기타]


(침대를 타고 비행할 수 있었다. 조금만 꿈틀거려도 그들은 와줬으며,
버튼만 누르면 모든게 다 움직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음.








(그들의 서비스는 최상이었다. 심지어 담요는 누빔이었음.)


<하늘>

 

후기
  
  돈을 모아서 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나라이다. 만약 또 갈 수 있다면, 2-3개의 지역에서 오랜시간 머무르고싶다. 개똥도 많았고 길에서 담배도 많이 피우며,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에서 음식을 먹고 쓰레기도 안 치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근사근하니 사람들이 굉장히 착했으며, 인종차별도 없었다.(우리 조는 당하지 않았다. 여자들만 가면 좀 다를수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잘 구비해놓고 관리하고 있으며, 날씨도 좋고 눈만 마주치면 인사하는 문화도 좋았다. 너무너무 좋았다. 살고싶다. 너무 좋다.
-(글쓴이의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끝.

[야생화1/스페인] 스페인 문학기행 2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돌아온 스페인 문학기행! 그 속으로 슝슝슝~~~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 '츄로스'>

  돈 후안을 인터뷰 한 후 저희는 스페인 길거리 음식인 츄로스로 떨어진 당을 충전했습니다. 츄로스는 맛있었고 달콤했으며 지금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사랑스러운 음식입니다. 여행을 간다면 꼭 드셔보세요~


17년 1월 11일 마드리드



  저희는 다음 일정을 위해 마드리드로 이동했습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는 교통이 편리해 소리아, 라 만차 꼰수에그라, 살라만카 등 근교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용이합니다.




살라만카


<장님과 그를 따라 여행하는 주인공 '라사로' 동상>

  그 중 첫번째 목적지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효시 <라사리요 데 또르메스의 삶 - 그의 행운과 불운> 의 배경이 되는 살라만카의 또르메스 강입니다.



  이 곳에서는 여행객 '다리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인과 산책하는 다리오를 살라만카에 거주하는 현지인이라고 생각하고 이 곳을 배경으로 쓰인 라사리요 데 또르메스에 대해 질문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다리오는 현지인이 아님에도 <라사리요 데 또르메스>가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 또한 왜 스페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오래토록 기억되는 작품인지에 대해 작품이 쓰인 1554년 당시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 또르메스 강 >

  그 외에도 또르메스 강 근처를 산책하는 몇몇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어떤 사람이건 이 작품의 배경과 작가,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렇듯 온 국민 모두가 아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국민 모두가 자국의 문학에 대해 깊게 알고 있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스페인 문화와 그곳의 국민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소리아



< 안토니오 마차도와 그의 부인인 래오노르 (서로 다른 장소에 동상이 있다.) >

  안토니오 마차도는 스페인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며 세비야 출신으로 마드리드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당대 작가들이 추구하던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지성보다는 직관으로부터 지식을 얻는 자칭 '불멸의 시'를 추구했으며 처녀작인 '고독 (1093)'은 감미로운 세기말적인 우수와 모더니즘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같은 해 카스티야지방에 프랑스어 교사로 부임했으며 얼마 후 결혼해 대표작인 '카스티야의 들 (1912)'이 쓰여젔습니다.


나그네여 Caminante – 안토니오 마차도
Caminate,
son tus huellas
el camino, y nada más;
그대 나그네여,
오직 길은 당신의 발자국일 뿐
본래 길은 없어요.
Caminante,
no hay camino.
se hace camino al andar.
Al andar se hace camino,
y al volver la vista atrás
se ve la senda que nunca
se ha de pisar.
그대 나그네여,
길은 아무 데도 없어요.
길은 당신이 만드는 것
걸음을 옮기며, 길을 만들고
서서 뒤를 돌아보니
당신이 결코 밟지 않았던
길이 보입니다.
Caminate,
no hay camino,
sino estelas en la mar.
그대 나그네여,
길은 없어요.
오직 바다에 별들만 있을 뿐

(안토니오 마차도의 가장 유명한 시 '나그네여')


- 다음 시간에 -

[야생화1/스페인] 스페인 문학기행

안녕하세요 저희는 스페인 문학을 통해 스페인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문학기행을 떠난 김동윤, 이주환, 이석현, 김인지입니다.


인천공항

16년 12월 31일 출국 (12.31~01.01 중국, 네덜란드 경유)

  이 당시만 해도 유럽 여행이라는 기대감에 잔뜩 신난 저희들은 두 번의 경유와 30시간의 비행이 이렇게나 힘든줄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겨우 도착한 중국 베이징의 공기는 매우 탁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스모그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공항과 가까웠던 숙소에서는 프론트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불통으로 인해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 환경은 매우 좋았으며 직원들은 외국인인 저희들에게 매우 친절해 편하게 쉬다 다른 경유지인 네덜란드로 출발했습니다. (의사소통 불통으로 인해 엄지손가락만 찍힌 조원1)


중국 베이징 숙소

 중국 남방 항공을 타고 가다가 네덜란드 케이엘엠 항공으로 갈아타자 서서히 유럽으로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으며 더욱 더 신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아닌 서양 사람들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거나 약을 달라고 요청하는 등의 행동은 살면서 매우 생소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착한 네덜란드는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키가 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괜히 천장이 높은 건물에 들어가면 '아 그래서 높구나' 하는 근거없는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암스테르담으로 나갔는데 한국과는 다르게 교통비가 상당히 비쌌습니다. 그에 비례하는 지하철 내부는 참 놀라웠죠. (감탄만 하고 사진은 찍지 못함)


17년 1월 1일 저녁  바르셀로나 도착

 힘겹게 도착한 타국 스페인은 밤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변에서는 스페인어가 들려왔고 밖으로 나가면 건물들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좌식생활이 아닌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며 피곤에 지친 저희들은 바로 잠을 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영수증을 정리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숙소


17년 1월 3일 발렌시아 도착



발렌시아 숙소


  바르셀로나에서 적당한 휴식을 취한 뒤 저희는 엘 시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발렌시아 일정을 잡았습니다. 엘 시드는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 또는 엘 시드 캄페아도르(El Cid Campeador)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카스티야 귀족이자 장군 및 외교관이었으며 후에 발렌시아에 망명하여 정복하고 통치했습니다. 
  엘 시드 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관사인 엘(El), 그리고 아랍 방언 단어 سيد 시디 또는 sayyid는 '경(Lord)'이라는 뜻인데 'Campeador'라는 명칭은 'campidoctor'에서 왔으며, 중세 라틴어로 개략적인 의미는 '투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엘 시드 캄페아도르'를 번역하자면 투사 영주님 이라는 뜻으로 그는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소매치기로 위험으로 인해 촬영 협조 불가능 따라서 불가피하게 조원 1은 엄지손가락만 출연)


엘 시드 동상 앞


엘 시드 동상 앞 2

17년 1월 8일 세비야 도착


세비야 정류장

  세비야에 도착한 저희는 한참을 헤매다 좋은 스패인 분들을 만나 다행스럽게 숙소에 체크인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현지에서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리자 전화도 빌려주셨으며 대신 통화도 해주시 길도 안내해주신 그분께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희는 짐을 풀고 쉬었습니다. 날이 좋아서 세비야 대성당도 가보고 원래 일정이던 돈 후안 동상 앞에서 인터뷰하기, 황금의 탑 찍기 등의 일정을 수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황금의 탑


세비야 대성당


성당 내부에 떠있는 콜롬버스의 관
(콜롬버스의 유언 때문에 공중에 떠있다 - 검색추천)


  세비야에서 주된 활동은 돈 후안 동상을 찍고 그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의견을 인터뷰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돈 후안 동상이 인파가 거의 없는 공원 뒤쪽에 있다보니 인터뷰 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의지로 인터뷰를 성공했습니다.
  '돈 후안'은 '카사노바'와는 달리 상상속의 인물이며 원래 민간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스페인의 극작가인 티르소 데 몰리나가  쓴 희극인 <세비야의 호색가(El burlador de sevilla)>에서 문학적 주인공으로 처음 선보이게 됩니다. 이를 통해 돈 키호테, 햄릿, 파우스트만큼이나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으며, 희곡이나 소설, 시 등에서 악당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책에대한 간략한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중세 스페인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방탕한 귀족이며 여자를 유혹하였다가 버리고 죽이는 엽색행위를 거듭하는데 결국 성직자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는 중세시대 전설의 바람둥이이며 바람둥이 세계에서는 이탈리아의 카사노바와 쌍벽을 이룬다고 합니다. 또한 스페인에서는 바람둥이를 일컷는 말로 '돈 후아니즘'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돈 후안 인터뷰 1
(돈 후안이 어떤 사람이고 사람들이 왜 돈 후안의 엽색행위를 사랑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페인의 고등학생)



돈 후안 인터뷰 2
(돈 후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책의 내용과 그의 행실이 어떤지 또한 어째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은 바람둥이 돈 후안의 동상이 세비야에 세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






(소매치기 위험으로 사진 부탁이 어려워 사진 찍는 조원은 불가피하게 엄지손가락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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