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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2/스페인] 스페인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

게시글의 제목을 보고 
'스페인에 왜 이슬람의 흔적이 있어?' 라는 질문을 하실 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블로깅에 앞서 저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배경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

스페인은 이슬람세력으로부터 711년부터 1492년 까지 약 781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스페인이라는 국가명칭이 아닌 서고트라는 이름의 왕국의 모습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는데
당시 왕위의 계승은 아들에게로 물려지는 것이 아니라 왕국의 귀족들에 의해 선출되던 제도인데다 재위기간도 짧아 왕의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던 때 였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왕 로드리고는 권력에 취해 귀족의 딸을 강제로 범하였고 이를 알게 된 그 귀족이 이슬람 군대를 끌어들여 로드리고 왕을 죽였습니다.
그의 복수는 성공했지만 그렇게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이슬람교도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서 전 유럽을 이슬람화 시키고자 했고 결국 이슬람세력은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뭘까요?
 
이슬람세력의 강한 군대와 왕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서고트 왕국의 병력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스페인의 국교이던 가톨릭교의 강압적인 반유대주의와 유대교, 타종교의 억압으로 불만이 쌓여있던 유대인들과 시민들이 이슬람세력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지배세력이던 서고트 왕족은 이슬람이 쳐들어오자 도망가기에 바빴고 유대교인들과 시민들은 성문을 열어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이슬람도 항복하는 이들에겐 선처를 베풀었고 무슬림이 아니더라고 약간의 종교세만 내면 본인들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녹색은 이슬람 왕조의 영토
오늘날 스페인의 영토


 
 
그렇게 스페인 전역을 차지한 이슬람세력은 781년간 머무르다 결국 가톨릭, 종교를 명분으로 힘을 모은 스페인의 여러 왕국에 의해 물러나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이 물러나는 모습
남쪽으로 후퇴되어 지금의 안달루시아 지역이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가장 오랜 시간 있었던 만큼
 그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이야기를 한 것은
앞으로의 제가 스페인에서 활동할 내용이 역사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어야 조금 더 재밌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정복한 기간은 한국역사와 비교해 보자면 
약 신라시대의 성덕왕, 발해의 고왕 때부터 조선의 성종 때까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적으니 더욱 그 긴 시간이 와 닿지요? :)
 
그렇다면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이슬람은 스페인에 있으면서 어떤 것들을 남겼을까요?
 
álgebra 수학, arroz , arrabal 교외, alcalde 시장, azúl 파란색
처럼 아랍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뭔~~가 아랍스러운 발음을 내는 아랍에 어원을 둔 단어들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가져온 0의 개념, 당나라와의 무역으로 얻은 종이, 농지에 물을대는 관개기술 까지 가져왔습니다 .
게다가
점성학, 연금술, 산수, 기하, 천문, 음악 이론,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 ·식물학, 논리학, 의학, 약리학, 수리학 등등 아주 다양한 장르의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했습니다. 아랍학자들의 노력으로 그리스의 문헌들은 번역되어 보존되었고 이로부터 유럽에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유럽에서는 가톨릭을 믿으며 그리스 학문과 사상은 소외받았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죠.

다음 게시글에서는 제가 스페인에 와서 직접 보고 느낀 이슬람의 흔적,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그들의 생각을 블로깅 하도록 하겠습니다 :)

[야생화2/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의 최대 명절 나우루즈 활동을 끝마치며

어느덧, 카자흐스탄이라는 먼 나라에 온 지도 4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4개월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야생화 프로그램을 통한 활동으로 인해 카작의 문화, 전통 그리고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우루즈 당일( 3월 21일, 22일, 23일) 을 제외하고도 나우루즈를 축하하는 행사들이 계속 되는데요,

4월1일은 기숙사에서 외국인들 학생을 위한 나우루즈 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사진은 외국인 학생들이 다 같이 모인 사진입니다 ㅎㅎ



이렇게 각자 자신의 나라의 음식들도 준비해서 상을 차려놓기도 하구요



나라별로 팀을 나누어서 줄달리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열기가 아주 뜨겁죠?



이렇게 사탕을 뿌리는 행위는 결혼식에서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복 많이 받아라라는 의미 입니다 ㅎㅎ



이렇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요
돈부라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카작 학생들과 함께 카작 춤을 추기도 했었습니다.

나우루즈 명절 당일에도 국가에서 축하하는 행사들이 워낙 커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선생님과 다른나라 친구들과 함께 나우루즈를 축하하고 준비하니
더욱더 기억이 남고 뜻깊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 날은 4월22일 카즈누 국립대학교에서 나우루즈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날은 예비학부 학생들도 수업을 빠지고 지도 교수님들과 함께 나우루즈 축제에 참가했는데요, 정말 스케일이 엄청났습니다. 저렇게 큰 유르타가 15개 정도가 설치되어있었고
외국인이라고 하면 정말 크게 환영해주고 좋아해줬습니다.


이렇게 결혼식 퍼포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유르타 안을 들어가면 이렇게 엄청난 음식들이 반기고 있습니다 ㅎㅎ
 
 
 
흥이 넘치는 민족답게 노래는 빠질 수가 없지요^^
 
 
 
대학교 축제이지만 크기가 일반 시민들도 참여해서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랑은 조금 사뭇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이 곳은 카작 민속 음악 박물관입니다.
카작민속 악기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민속악기가 다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돈부라' 라고하는 카작 전통 악기인데요.
박물관안에 돈부라의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종류에 따라 소리도 다양하다고는 하나, 카작 친구에게 물어보니
다른 소리를 가진 돈부라도 있으나 일반인이 듣기에는 구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ㅎ
" 돈부라 족, 카작 족 " ( 돈부라가 없으면 카작도 없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작사람들에게 돈부라는 중요한 악기입니다ㅎ
나우루즈때도 절대 빠지지 않죠!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악기이고 돈브라의 소리가 곧 카작의 소리라고 합니다.
돈부라는 줄 두개로 모든 소리를 낼 수 있는데요,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퀴' 라고 합니다
돈부라를 연주할 수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퀴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잠시 카작의 소리에 대해 감상하시죠~ ㅎ
 


4개월 동안 나우루즈 명절 에대해 활동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갈려고하는 카작 민족을 보면서 느낀점도 많았고
또 그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너무 짧은 교환학생기간이여서 물흐르듯 시간을 보낼 수 도 있었을텐데
야생화를 통해서 매달 뜻깊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저 스스로도 정말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짧고도 짧았던 카자흐스탄 이제 안녕~







[야생화2/프랑스] 건축의 발자취를 통한 프랑스의 시대상과 문화


안녕하세요 ! 이번에 프랑스에 파견이 된 유주혜라고 합니다 :)

먼저 첫번째 포스팅에서는 고딕양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프랑스에서 대표적으로 '고딕양식' 하면 떠오르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같은 고딕양식이라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조금 다른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고딕양식

1)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먼저 Chartres(샤르트르) 마을은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파리 근교마을입니다 ! 그래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많이 온다고 합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샤르트르 대성당을 향해서 걸어가다 보면
이렇게 샤르트르에 온 것을 환영하는 전광판이 나오게 됩니다 !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은 형형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하여 신비로운 실내 장식으로 연출하였습니다. 약 1200개에 다르는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중세시절 왕족과 성경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하였습니다. 문화유산물에 유일하게 일반시민의 모습도 함께 그려진 모습으로 비추어 볼 때 샤르트르 대성당의 복원과 유지에 관련하여 그 시절 프랑스 시민들의 도움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만의 독특한 푸릉색 스테인드 글라스는 ‘샤르트르 블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쟝 드 장뒹 철학가는 ‘들어서는 순간 천국에 온 듯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역시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비교해 보았을 때 스테인드 글라스 만큼은 샤르트르가 더 아름답고 독특하고 신비롭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시절 로마네스크 건축은 비교적 튼튼하게 건물을 세우는 것을 중점으로 두어
그 벽은 최대한 두껍게 하고 그로인해 실내는 작고 창문은 많이 만들 수 없었는데
반면 고딕양식의 표본이나 첫 발판이었던 샤르트르 대성당은
교회건축물로써 대표할 수 있을 만한 상징적인 조각들로 화려함을 유도하였고,
하늘과 가깝게 하기 위해 천장은 높게하면서 아치를 향해 뻗은 수많은 기둥들의
모양과 크기를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2)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Notre-dame cathedrale de Paris)
 
센느 강의 시테 섬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 12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의미로 성모마리아를 가리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의 종교 예술이 집결된 ‘고딕의 보물’로 평가받고있습니다. 먼저 건물 정면에 있는 문 3개는 북쪽이 ‘성모마리아의 문’, 중앙이 ‘최후의 심판의 문’, 남쪽이 ‘성 안나의 문’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대성당은 1163년에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착공되었습니다. 1320년경에 공사는 끝났으나 건설 도중과 완성 후에도 대성당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예를들어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바로 이곳에서 열린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옆모습 모형)
 
 
 
대성당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3개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색색의 유리를 통과하는 빛의 색깔이 아름다워 ‘장미창’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이 1210년경에 제작된 것입니다. 특히 파리 대성당의 장미창은 4가지 색만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과연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4가지 색상만으로 저런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비교해 보자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3개의 장식 중 남쪽은 그리스도를 테마로, 북쪽은 성모마리아를 테마로 잡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습니다. 또한 성당 내부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조각들은 역대 왕들이나 교황들의 모습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 샤르트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탑은 15세기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거지에서 왕까지 온갖 계급을 통하여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과 부당한 형별제도, 하층민의 소외단 삶 등을 묘사한 소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무섭기도 한 조각상은 뮤지컬과 소설의 주인공 ‘콰지모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종탑에 올라오면 ‘콰지모도의 종’과 고딕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인 뾰족한 첨탑과 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십자가 모양으로 생겼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에펠탑, 몽마르트언덕, 몽파르나스타워 등이 한 눈에 보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야생화2/멕시코]트럼프 당선과 멕시코의 전반적인 경제상황

지금의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이후로 여러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멕시코는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중하나로써 환율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등 상당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멕시코에 가서 현재의 멕시코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조사해보기로하였다.


먼저 이 사진은 트럼프가 세운다고했던 멕시코-미국간의 장벽을 비꼬는 내용인데 만약 트럼프가 장벽을 세운다면 우리는 춤추기좋아한다고 알릴수있는 더많은 공간을 얻게될것이다라고 하고있다. 멕시코에 처음 도착했을때만 하더라도 모든 멕시칸들이 트럼프를 정말 싫어하였고 지금도 싫어하고있는중이다..

 
사실 멕시코에 산지 몇달밖에안되는 외국인이 모든 경제상황을 다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되어 멕시코의 UNAM대학교에 재학중인 친구들과 멕시코 경제에 대해서 토론을 해보았다.
각각 화학,회계학,경제학을 전공하고있는 친구들이다. 먼저 트럼프의 당선 이전과 지금의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하였다. 그러자 이친구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표출하였고, 환율이 전과 달라좋아하는 해외여행을 가기가 부담스러워졌다고하였다.
 
 
또한 한국을 떠나 머나먼 멕시코에서 사업을하고계시는 한국식당사장님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멕시코에서 중독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계시는 사장님께서는 전과 다르게 매출이 달라진건없지만 환율이 안좋아짐에 따라 실질적인 수익은 많이 줄어들었다고하셨다.
 
 
 또다른 식당을 운영하시는 사장님께서도 비슷하게 크게 타격을 입었다던지 할건없었다고 전과 비슷하다고하셨다. 모든 멕시코의 한국인 사장님들과 얘기를 해보진않았지만 트럼프의 당선과 멕시코의 경제위기로 한국인 사업체에는 크게영향을 안받는다는것이 다행이면서도 멕시코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였다.

 
 그래서 나는 멕시코의 식당,카페가아닌 다른 성격의 비즈니스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궁금하여 멕시코의 께레따로주에 위치한 CJ 물류회사에 찾아갔다.

 
가기전에 인터넷으로 공문을작성하고 허락을받는데 까지 2주정도걸렸다.. 공문도 한국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써야해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한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먼저 도착하니 한국인 직원한분과 왼쪽의 현지인 과장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준비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할때마다 정말 오기를 잘한거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사실 CJ물류는 멕시코에서 생산한 물건 중국에서 생산한 물건들을 수입,수출하는 곳이기에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고하였다. 그리고 멕시코는 낮은임금,학력의수준이 어느정도 이상넘어간다면 궃은일도 마다하지않고 묵묵히하는 국민성이있기에 엄청난 잠재력이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인들이 많이 없는데 한국에있는 유능한 인력들이 많이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당선으로 확실하게 멕시코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하지만 이에반해 여기서 사업을하시는 한국인 사장님들은 그렇게 큰 타격을 받진않았고 더욱이 나같은 한국인 유학생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앞서 말했지만 여기있는 멕시코친구들과 멕시코사람들에게는 힘든상황이지만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좋은 상황이 된다는게 정말 마음이 아팠고  또 경제라는 것이 정말 심오한 학문이란걸 깨닫는 활동이었다.
 
 
- 돌아오는 길에 삼성, CJ등 다국적 기업들이 입주해있는 산업단지 전경






[야생화2/스페인] 각 지열별 건축물을 통해 배우는 스페인 문화

안녕하세요.

이번에 해외파견을 가게 된 스페인의 건축물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건축물을 통한 관광은 스페인 수입에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아주 유명하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는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건축가가 남긴 유명한 건축물이 많이 있습니다.


첫 번째 건축물은 레이알광장에 있는 가우디의 가로등입니다.


가로등의 중심에는 화려한 투구모양을 달고 있는 기둥이 있고 그 주위로 6개의 가로등이 둘러져있습니다. 가우디는 그의 첫번째 건축물인 이 가로등으로 바르셀로나 시에서 주최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했습니다. 시에서는 이 가로등을 거리에 설치하기로 하였으나 비용상의 문제로 없던 일이 되었고 이에 화가 난 가우디는 더 이상 시와 관련된 사업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구엘공원입니다.




가우디투어를 하면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바로 구엘공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시했던 가우디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구엘공원은 원래 60호 이상의 이상적인 전원주택를 지어 부유층에게 분양할 생각 이였으나 당시 시대와 맞지 않는 발상과 재정문제로 인해 건물 세 채와 중앙광장, 타일벤치만 지어진 채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공원을 사들여 시립공원으로 꾸몄고 그 후로 시민들이 다녀가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위주로 한 건물들과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이 인상깊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가장 잘 어우러진 예로는 타일벤치가 있습니다이 벤치는 등부분은 나와 있고 엉덩이부분은 들어가 있는 곡선의 모습으로 미적요소뿐만 아니라 자세교정도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비가 오면 움푹 패인 엉덩이부분으로 물이 흘러내려가 도마뱀동상의 입으로 흘러나오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성가족이라는 뜻으로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을 뜻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가우디는 성당 외부에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성당의 겉모습을 보면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이며 성당의 외벽은 유럽의 어느 건축양식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멘트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의 곡선이 보이며 매우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당의 내부는 나뭇가지를 닮은 기둥들이 천장을 향해 세워져있습니다. 또한 자연광을 이용해 성당 내부를 밝힐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완성인 채 아직까지 지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성당은 관광객들의 입장료나 기부금을 받아서 지어지고 있고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전체가 완성될 경우 성당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약 170m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까사밀라입니다.


까사밀라는 1984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물중 하나이로 독특한 외관이 채석장 같다고 하여 스페인어로 채석장이라는 뜻의 라 페드레라라고도 불리는 아파트형식의 공동주택입니다. 이 건축에서도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라는 가우디의 신념을 보여주듯 자연과 흡사한 모습으로 아파트를 완성했습니다. 건물 전면에 느낌은 마치 물결이 파도치는 듯해 살아있는 곡선을 보는듯하고 옷장과 등받이의자 등의 가구도 집 구조에 맞게 모두 곡선입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은 일직선과 직각이기만 했던 당시의 건축물들과 맞지 않았고 아파트 분양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고 바르셀로나 시내를 구경했을 때 거리뿐만 아니라 식당과 성당에서도 가우디의 건축물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만큼 가우디가 스페인의 건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우디의 철학이 담겨있는 건축물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가우디를 이해하게 되었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이상으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야생화2/카자스흐스탄] 중앙아시아 최대 명절 나우루즈





저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자, 중앙아시아의 최대 명절인 나우루즈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나우루즈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개념으로, 중앙아시아에서는 봄이 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새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나우루즈의 기원은 고대 페르시아까지 올라가지만 현재는 중앙아시아의 축제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날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중요한 날인데, 따뜻해지는 조금씩 따뜻해지는 3월부터 거의 축제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카자흐스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앙아시아에서는 이 날을 기념합니다. 여성의 날이 오기전부터 대부분의 식당이나 가게, 쇼핑센터들이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꽃으로 꾸미거나 예쁘게 장식을 합니다.

여성의 날때는
 레스토랑에서도 여성들이 들어오면 꽃을 건네고 택시기사아저씨들, 라디오에서도 여성의날을 축하하는 노래가 흘러나기도 합니다. 그 날만큼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하고 꽃집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여성의날부터 시작해서 카작의 봄은 정말 축제같습니다.


 
여성의 날을 맞이해 교수님을 위해 다같이 반 사람들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입니다.


 
실제로 여성의날때 레스토랑에서 받은 꽃들입니다



 
이 사진은 여성의날을 축하한다고 카작 친구에게 받은 문자입니다.^^



여성의날때 받은 꽃들 입니다 ㅎㅎ


본격적으로 나우루즈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 유르타(카작 전통 이동식가옥) 을 설치하기도 하고 각 가게에서는 카작스러운 기념품을 팔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희 기숙사안에도 유르타를 장식했습니다.
나우루즈가 오기 전주부터는 학교에서도 나우루즈에 관한 텍스트를 공부하기도하고 가게나 카페, 레스토랑 등등 나우루즈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외국인인 제가 느끼기엔 도시분위기가 바뀐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보통 나우루즈명절은 우리나라의 설날과 마찬가지로 3일을 쉽니다. 본격적인 나우루즈 명절때는 각 광장에서 축제가 있었는데요 광장을 들어서자마자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 130개의 민족이있는 나라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줄달리기를 하고 있는 카작 남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놀이라고 생각했던 줄달리기가 이렇게 먼 곳에서도 전통놀이로 즐긴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카작 남자들 입니다. 우리나라의 씨름과 비슷해보이지만 씨름보다 더 거칠고 레슬링에 더 가까운 느낌이였습니다.
 
 

 
 

이렇게 장군옷으로 무장한 남자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는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저포함)

카작사람들은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을 많이 강조한다고 들었는데 축제때 그런 것들이 녹아 있었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들, 매를 데리고 다니며 돈을 받으면서 사진을 찍게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제 손등에 매를 올려놓고 찍어보고 싶었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무서워서 조용히 뒤에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 카작 민족들은 과거에 독수리나 매를 이용해서 사냥을 했습니다.




또 놀라웠던것은 우리나라의 12간지처럼 카작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다른 점은 용대신 달팽이가 있다는 것이 였습니다. 너도 나도 이 조각상앞에서 사진을 찍을려고 했는데요, 저도 재빠르게 한 컷 찍었습니다



 
이것은 카작의 전통놀이 중 하나인 양뼈로 하는 카작의 전통 민속놀이인데 우리나라의 비석치기 와 비슷합니다



 

 

 
전통 카작 간식을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



 이 외에도 카작사람들에게 중요했던 철 악세사리,  전통모자,옷 , 전통악기 등 카작스러운 물건들을 파는 노상들이 양쪽 거리에 쭉 있었습니다. 물론 아기자기하게 귀여운 악세사리나 기념품들도 있었어요



 
(나우루즈를 기념해서 기숙사안에도 유르타처럼 꾸몄어요)




 카작 전통 집인 유르타는 광장 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카작인들에게 유르타는 카작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물론 나우루즈는 카작 민족의 명절이고 모든 민족이 이 명절을 챙기진않겠지만 내가 본 광장속 나우루즈 모습은 다양한 민족들이 다같이 한 마음으로 봄이 온 것을 축하하고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겉으로 이색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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